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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지쿠악스 리뷰 – 복수의 서사, 3D 시네마틱 스타일, 연방군의 도덕적 균열

by blue9106 2025. 6. 30.

건담 지쿠악스 관련 그림
건담 지쿠악스

『건담 지쿠악스(Gundam: Requiem for Vengeance)』는 넷플릭스와 협업하여 제작된 최초의 풀 3D 건담 애니메이션으로,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에 가까운 시네마틱 그래픽 스타일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퍼스트 건담과 동일한 우주세기 0079년, 지온 공국과 지구연방 사이의 일년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 아이리스의 시선을 통해 지온군의 내부 갈등, 복수심의 정당화, 그리고 연방군의 위선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기존 건담 팬층과 새로운 시청자 모두에게 낯설고도 신선한 감각을 제공하는 이 작품은, 전통 서사 구조와 새로운 시청 미학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실험작이라 평가할 수 있다.

복수의 서사

『건담 지쿠악스』의 중심 서사는 주인공 아이리스의 복수극이다. 그녀는 일년전쟁 중 연방군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그로 인해 지온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 복수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닌, 전쟁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작품은 아이리스의 내면을 따라가며, 그녀가 겪는 감정의 동요, 소속의 갈등, 그리고 복수심이 서서히 정치적 신념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아이리스는 단순한 전형적 여성 캐릭터가 아닌, 적극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며 스스로 전장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인물로 설계되었다. 그녀의 여정은 자신이 속한 지온군조차 정의롭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르며, 복수라는 감정이 개인의 해소를 넘어서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사유로 전환되는 변곡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는 기존 건담 시리즈에서 보기 힘들었던 '내면화된 정치'를 강하게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새롭게 질문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건담 지쿠악스는 복수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이 단순한 개인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와 윤리의 층위까지 파고드는 서사로 확장되며, 작품의 서사적 깊이를 결정짓는다.

 

3D 시네마틱 스타일

『건담 지쿠악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이다. 본작은 전통적인 2D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 아닌, 언리얼 엔진 기반의 풀 3D 렌더링 기술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연출이 실사 영화에 가까운 몰입감을 제공하며, 기존 건담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 3D 모델링을 활용한 로봇 액션은 무게감 있는 움직임과 정교한 기계 묘사를 가능하게 하며, 전장의 폭력성과 혼란스러움을 보다 현실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아이리스가 탑승하는 자쿠의 움직임은 메커닉이 아닌 일종의 '중장비 무기'로서 그려지며, 로봇이 아닌 무기로서의 건담 세계관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적 건담 시리즈가 가진 '히어로성'과는 다른 결을 형성한다. 또한 인물의 표정과 감정 표현 역시 3D로 구현되며, 기존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감정 연출과는 다른, 더 억제되고 사실적인 연기가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극적인 감정의 폭발보다는 누적된 긴장감과 점진적인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 전반의 무게감을 배가시킨다. 물론 일부 시청자에게는 이러한 연출 방식이 건담 시리즈의 전통성과 동떨어져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쟁이라는 주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서, 지쿠악스는 의미 있는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연방군의 도덕적 균열

『건담 지쿠악스』가 기존 건담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는, 지온과 연방 양측의 도덕적 대칭 구조를 더욱 명확하게 붕괴시키는 서사 방식이다. 기존 퍼스트 건담에서는 지온이 침략자이자 패전국으로 묘사되고, 연방은 상대적으로 질서를 수호하는 쪽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지쿠악스는 이러한 구도를 재해석한다. 작품은 연방군 내부의 부패, 오만, 민간인 학살 등의 행위를 세세하게 조명하며, 전쟁의 피해자가 반드시 지온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특히 아이리스가 겪은 가족의 죽음은 연방군이 자행한 무차별 공격의 결과였으며, 이는 그녀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근거이자, 연방이 내세운 정의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졌는지를 보여준다. 지온 내부 또한 이상주의와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지온도 완전한 피해자일 수 없다’는 다층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국 지쿠악스는 전쟁에서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고, 개인의 시선에서 본 권력과 책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결론은 기존 건담 시리즈가 던졌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보다 냉소적이고 사실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지쿠악스는 새로운 시청각적 시도만이 아닌, 건담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대한 해석적 질문을 재구성한 작품이며, 앞으로의 ‘뉴 건담 시대’를 예고하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