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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X와 철혈의 오펀스 리뷰 – 전후 세계관, 소년병 서사, 희망 없는 리더십

by blue9106 2025. 7. 1.

건담X 관련 그림철혈의 오펀스 관련 그림
(좌)건담X (우)철혈의 오펀스

『기동신세기 건담X』와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는 시대적 간극을 두고 제작된 작품이지만, 놀랍도록 유사한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 둘 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세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며,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건담X의 가로드 란과 철혈의 오펀스의 오르가 이츠카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계층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와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들로, 각기 다른 시대의 젊은 리더상을 대변한다. 본 리뷰에서는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그려낸 전후 세계관의 의미, 소년병을 중심으로 한 서사의 현실성, 그리고 희망보다는 책임을 짊어진 리더십의 그림자를 중심으로, 두 작품의 본질적 접점을 해석하고자 한다.

전후 세계관

『건담X』와 『철혈의 오펀스』는 각각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 외전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결정적 공통점을 가진다. 『건담X』는 뉴타입 전쟁 이후로 문명이 파괴된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철혈의 오펀스』는 대전쟁 이후 정치권력이 재편된 화성 사회를 무대로 한다. 이 두 세계는 모두 ‘전쟁이 끝났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며, 등장인물들은 그 폐허 속에서 생존과 자립을 위한 투쟁을 벌인다. 특히 『건담X』에서 묘사되는 무법 지대, 거래 중심의 도시국가 체제, 전쟁 잔재 기술의 재활용 등은 『철혈의 오펀스』의 하층민 사회와 닮아 있다. 한쪽은 뉴타입 기술의 유산을 중심으로, 다른 한쪽은 모빌슈트의 과거 유산인 건담 프레임을 중심으로 자생력을 확보한다. 두 작품 모두 구체제를 극복하려는 ‘이후 세대의 의지’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정치 구조보다는 인물 개개인의 결단과 변화에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전후 세계관은 건담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묘사해온 이상주의와는 다른 색을 띤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건담X』와 『철혈의 오펀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전쟁의 종결이 곧 새로운 시작이 아님을 강조하며 묵직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오펀스 소년병 서사

이 두 작품의 중심 서사는 ‘소년병’이라는 키워드로 압축될 수 있다. 『건담X』의 가로드 란은 부모 없는 고아 출신으로, 뉴타입을 잡아 파는 일에 종사하다가 결국 뉴타입 소녀 티파와 함께 도망쳐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철혈의 오펀스』의 미카즈키와 오르가는 CGS라는 민간 군사조직 하층에서 착취당하다가 반란을 일으켜 자립 조직인 철화단을 결성한다. 두 작품 모두 성인 중심의 권력 질서 속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직접 만들고, 세계와 맞서 싸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이 소년병 서사는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때로는 잔혹하다. 가로드는 스스로 싸우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묻고, 미카즈키는 조직의 명령과 신념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마저 제거해버리는 기계적인 전사로 변해간다. 건담 시리즈에서 아이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오래됐지만, 이 두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무겁게 그 문제를 다룬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무기와 명령 속에서 살아간다. 『건담X』와 『철혈의 오펀스』는 소년병이라는 설정을 통해 전후 사회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질문하며, 건담 시리즈 전반에 걸친 ‘전쟁의 윤리’를 재고하게 만든다.

 

희망 없는 리더십

가로드와 오르가는 모두 젊은 리더이지만, 이들이 상징하는 리더십의 양상은 극명하게 다르다. 가로드는 끝내 감정과 사람을 신뢰하고, 이상을 현실로 끌어내리려는 낙천적인 결단형 리더다. 반면 오르가는 조직 전체를 짊어지고 현실과 협상하며 점점 피폐해져가는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던 인물들이며, 선택의 대가를 누구보다 무겁게 감당한다. 『건담X』에서는 가로드가 점차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 리더로 성장하지만, 『철혈의 오펀스』에서 오르가는 희생을 거듭하며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책임'을 홀로 떠안는다. 특히 철화단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오르가는 “지금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며 자신을 다그치고, 미카즈키는 “오르가의 명령이니까”라는 이유로 죽음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리더십이 이상을 실현하는 힘이라기보다는, 무거운 책임과 비난을 감당하는 자의 자리임을 보여준다. 희망이 사라진 리더십은 결국 구조적 문제다. 『건담X』와 『철혈의 오펀스』는 모두 시스템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책임의 대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리더상은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지켜낼 수 있는 자임을 일깨운다. 두 작품의 마지막은 결코 밝지 않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무엇을 놓지 말아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