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는 2022년 방영을 시작한 건담 시리즈 최초의 여성 주인공 중심 정통 TV 시리즈로, 전통적인 우주세기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서사 구조와 세계관, 그리고 청춘 드라마 요소를 융합한 작품이다. 특히 ‘벤디안 시스템’, ‘건드 암즈’, ‘기업 주도형 사회 체계’, ‘교육과 전쟁의 경계’ 등 첨단 과학 기술과 윤리, 사회 구조를 건담 시리즈 특유의 무게감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내며 팬층은 물론 신규 시청자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본 리뷰에서는 작품의 스토리 전개 방식, 캐릭터 관계의 감정적 밀도, 그리고 현대 사회와 맞닿아 있는 주제 메시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스토리 구조의 구성 방식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는 기존 건담 시리즈가 주로 다루던 군사 정치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사립학교를 무대로 하는 청춘 드라마의 외형을 차용하여 독창적인 이야기 방식을 구축한다. 작품의 시작은 ‘애스티카시아 고등전’이라는 우주기업 재벌들이 설립한 학원에서 벌어지는 이권 경쟁과 모빌슈트 배틀로, 전쟁과 사회적 권력구조를 학생들의 대결 구도 속에 녹여낸다. 주인공 스레타 머큐리의 등장과 그녀가 조종하는 건담 ‘에어리얼’의 존재는 곧바로 작품 전체의 구조를 흔들어 놓는다. 에어리얼은 ‘건드 암즈 시스템’이라는 생체 기반 인터페이스 기술이 탑재된 기체로, 스레타와의 정체적 연결성을 통해 이 작품이 지닌 윤리적 딜레마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특히 AI 혹은 인간의존 기술이라는 소재가 중심 테마로 작용함으로써, 단순한 기체 간 대결을 넘어 기술철학적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진다. 스토리 전개는 전통적인 '정의 대 악'의 구조보다 훨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기업 간 인수합병, 무기 산업의 통제권 다툼, 생명윤리의 침해와 같은 현대적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시즌 1과 시즌 2의 전개 구조는 극명하게 대조되며, 전자는 청춘 성장극의 외피 속에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이고, 후자는 그 진실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정치 스릴러적 전개로 급전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유지하면서도, 건담 시리즈의 근본인 전쟁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캐릭터 관계의 감정적 밀도
『수성의 마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연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다. 중심축이 되는 인물은 스레타 머큐리와 미오리네 렘브란으로,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 혹은 협력의 범주를 넘어선다. 미오리네는 거대 기업 총수의 딸로서 억압적 체계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 하고, 스레타는 외부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학습해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둘의 감정선은 초반에는 계약 관계로 출발하지만, 갈등과 협력, 신뢰와 배신을 거치면서 점차 복잡한 유대감으로 발전한다. 특히 시즌 2에서 드러나는 스레타의 가족사와 에어리얼의 정체는 이 관계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다. 미오리네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혼란을 겪는 모습, 스레타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주인공-서브 주인공 관계를 넘어, 두 사람의 정서적 교차점에서 작품 전체가 전개되는 감정 서사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구엘 제터크, 엘란 케레스, 샤디크 제네리 등 주요 캐릭터들은 각자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윤리,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 간의 관계망은 학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점차 확장되고 충돌하게 된다. 특히 구엘의 경우 초반에는 전형적인 라이벌처럼 보이지만,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전쟁의 피해자이자 도덕적 중재자로 변모하면서 입체적인 서사 전개를 선보인다. 결국 『수성의 마녀』는 캐릭터 관계를 통해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닌 감정적 공감과 심리적 연결,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며, 기존 건담 시리즈와는 다른 정서적 서정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감정 밀도의 구조화는 시리즈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며, 팬덤의 폭넓은 해석과 공감을 유도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주제 메시지의 현대적 해석
『수성의 마녀』는 건담 시리즈가 일관되게 지켜온 ‘전쟁과 인간성’, ‘기술과 윤리’라는 핵심 주제를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기업이 전쟁을 주도하고,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구조는 현실 세계의 글로벌 무기 산업과 AI 기술 개발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건드 암즈’는 생체 정보 기반 인터페이스로, 조종자가 신체적·정신적 대가를 치르면서 기체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이는 단순한 무기 기술이 아니라, 인간성과 도구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정으로서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작품은 이러한 기술적 딜레마를 단순히 설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의 정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응 능력,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예컨대 에어리얼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작품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감정적 연대 가능성까지 조명하게 된다. 또한 ‘수성 출신’이라는 배경은 소외된 지역, 경제적 빈곤, 정보 격차와 같은 사회적 요소를 대변하며, 미오리네가 그들과 연대하는 과정은 기존 상류층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허무는 진보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스레타가 반복적으로 외치던 “한 발 전진하면 얻는 것이 있다”라는 대사는 단순한 캐치프레이즈를 넘어서, 무력과 감정, 기술과 인간성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주제의식을 담아낸다. 결국 『수성의 마녀』는 기존 건담 시리즈가 보여준 거대 전쟁 서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윤리, 감정, 기술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실험작이자 전환점이다. 동시에 ‘건담’이라는 브랜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젠더, 사회구조, 청춘성, 정체성의 혼란 등 다양한 현대적 요소를 융합함으로써, 건담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넓힌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