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은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의 세계관을 통합하는 ‘리셋’의 개념을 담은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으로, 건담 시리즈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이다. 본 리뷰에서는 독특한 세계관 구조 속에서 펼쳐지는 문명 순환의 철학을 해석하고, 주인공 로랑 세악을 비롯한 핵심 인물들의 선택과 성장, 그리고 턴에이 건담 특유의 디자인과 메카닉이 가진 의미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전통적인 건담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톤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성적 시각을 통해 ‘건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턴에이 건담 세계관 구조로 본 문명 순환의 철학
∀건담의 세계관은 ‘리셋’과 ‘재생’을 핵심으로 삼는다. 과거의 기술 문명이 붕괴하고 인류가 다시 농경 사회로 회귀한 세계가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이 설정은 단순히 미래 문명의 멸망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주세기 및 이전 건담 시리즈들에서 반복되던 전쟁의 결과로 문명이 수차례 붕괴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건담은 기존 건담 세계관의 ‘미래’가 아니라 ‘끝 이후의 시작’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은 “월광조례(Moonlight Butterfly)”로 인해 고도의 문명이 붕괴된 이후, 대기권 내 정착민들과 달에서 재이주한 문명 사이의 충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술적 우위를 지닌 문명과 비교적 원시적인 사회가 충돌하면서 ‘문명의 기억’과 ‘기술의 위험성’이라는 철학적 질문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문명은 진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윤리와 책임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메시지가 이 구조 속에 담겨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이전 건담 시리즈들과 명확하게 구분된다. ∀건담은 단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세기, 애프터 콜로니, 미래 세기 등 기존의 평행 세계들을 모두 ‘과거의 유산’으로 포함하며, 이를 하나의 순환구조 속에서 통합한다. 이로써 ∀건담은 “모든 건담 시리즈의 종착점이자 기원”이라는 평을 얻는다. 이것은 곧 전쟁과 기술, 문명의 반복성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실험이기도 하다.
인물 중심으로 분석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
∀건담의 주인공 로랑 세악은 건담 시리즈 역사상 가장 이타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싸우기 위해’ 기체에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지키고 충돌을 막기 위해 싸운다. 로랑의 캐릭터는 비폭력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며,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한다. 이는 아무로나 카미유처럼 고통 속에서 각성하는 타입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인물상으로, 건담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사례다. 한편, 키엘 하임과 디아나 소렐이라는 두 여성 인물은 작품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디아나는 달의 여왕으로, 기술과 권력을 지녔지만 평화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녀는 인간적인 이상주의자이며, 스스로 권좌를 내려놓고 지상인의 삶을 체험하며 그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반면 키엘은 현실에 기반한 사고를 가진 인물로, 이상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며 주변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롭게도 두 인물은 외모가 동일하여 자리를 바꾸는 전개가 나오는데, 이는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기타 인물들도 고정된 선악 구도가 아닌, 모두가 자신만의 명분을 가지고 행동하는 입체적 구조를 띤다. 릴로, 해리 오드, 기엄 길낫 등 주요 등장인물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각의 철학과 이해관계를 지닌 주체로 등장하며, 갈등과 조화의 서사를 구성한다. 이러한 인물 관계는 ∀건담이 단순한 ‘전쟁 이야기’를 넘어선, 인간 이해와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이상주의적이나, 주변 인물들의 현실주의와 충돌하면서 작품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 자체가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메카닉 디자인으로 읽는 상징성과 미학
∀건담은 메카닉 디자인에서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이고 실험적인 외형을 지닌 작품이다. 턴에이 건담의 디자인은 일본 메카닉 디자이너가 아닌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시드 미드(Syd Mead)가 맡았으며, 그 결과 일반적인 ‘로봇’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유려하고 추상적인 외형이 탄생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턱수염 같은 곡선 형태의 디자인으로, 이는 당시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독창성과 상징성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메카닉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적 새로움을 넘어, 턴에이 건담이라는 존재가 지닌 ‘기술의 유산’이라는 설정을 시각화한 장치다. 작품 내에서 턴에이 건담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인류가 남긴 기술 문명의 잔재이자, 그것이 불러온 비극을 내포한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월광조례 시스템은 주변 모든 문명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기술이 윤리 없이 발전했을 때 어떤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반면 지상 세력의 모빌슈트들은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며, 달의 기술과는 확연한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한 대비는 기술 격차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상호 이해 부족을 상징하며, 기술의 발전 그 자체보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부각시킨다. 메카닉이 단지 전투 수단이 아닌,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담의 메카닉 디자인은 건담 시리즈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결론적으로 ∀건담의 디자인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익숙한 틀을 깨고, 다시금 “왜 건담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작품이 단순히 새로운 시리즈가 아니라, 건담이라는 프랜차이즈 전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회고적 실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바로 이 메카닉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