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는 건담 프랜차이즈 최초의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전통적인 전쟁 서사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사회 구조와 인간 관계, 그리고 기술 윤리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있다. 본 리뷰에서는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의 캐릭터 구성을 중심으로 여성 주체 서사의 방식, 건담 기술이 지닌 윤리적 문제, 그리고 붕괴된 가족 체계와 재구성되는 관계성을 분석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여성판 건담’에 그치지 않고, 성별, 계급, 과학, 정치가 교차하는 새로운 건담의 지평을 열며, 수용자에게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성의 마녀』는 시대적 맥락에 부합하는 독립적 가치와 비판적 시선을 동시에 제공하며, 건담이라는 거대한 브랜드 안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여성 주체 서사로 드러난 정체성 구조
『수성의 마녀』는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를 중심으로 ‘여성의 주체적 선택’이라는 테마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세웠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그녀가 세계의 구조와 마주하며 자신의 감정, 가치관, 윤리를 스스로 정립해가는 서사적 흐름에 있다. 기존 건담 시리즈에서 여성은 종종 ‘보조자’ 혹은 ‘정서적 장치’로 소비되었던 반면, 슬레타는 전투, 결단, 인간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존재다. 특히 슬레타의 순진하고 단선적인 판단이 서사의 후반부로 갈수록 의심과 저항으로 진화하며, 그녀의 변화는 곧 시청자에게도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마녀라는 서사적 은유와 맞물려, 기존의 건담 서사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여성 주체 중심의 내면적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이는 단순한 성별 구도가 아니라, 정체성과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작용한다.
기술 윤리가 중심이 된 건담 시스템
『수성의 마녀』에서 건담은 단순한 병기를 넘어 ‘생명과 기술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작품의 핵심 기술인 GUND 포맷은 생명과 기계의 융합이라는 미래적 개념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묘사되기도 한다. 슬레타가 조종하는 에어리얼은 어머니의 의도, 기업의 정치, 기술의 진보가 교차하는 복합적 산물이며, 그 안에는 AI, 복제, 인격 데이터라는 윤리적 문제가 응축돼 있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건담이라는 이름 아래 무조건적 전투 능력만이 아닌, 기술이 지닌 사회적 책임과 인간성의 조건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 특히 기술의 진보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전작들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하며, 이로 인해 『수성의 마녀』는 메카 애니메이션을 넘어 윤리 드라마의 성격까지 갖추게 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도덕성과 구조적 목적이 언제나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붕괴된 가족 구조와 새로운 관계성
이 작품에서 가족은 더 이상 혈연이나 도덕성으로 유지되는 단위가 아니다. 슬레타는 어머니 프로스페라에게서 ‘기계적으로 성장하는 도구’로 길러졌고, 이 과정에서 모성의 윤리는 파괴된다. 동시에 학교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특히 미오리네와의 상호작용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서사로 읽힌다. 전통적인 ‘핏줄 기반 가족’은 해체되고, 선택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의사 가족’이 중심이 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가족 개념과 맞닿아 있다. 미오리네와 슬레타는 서로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인식하고 그것을 보완하며 성장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는 ‘전통과 권위’의 해체라는 메시지와도 연결된다. 『수성의 마녀』는 가정이 정치적 도구가 되는 상황에서 개인이 감정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하며, 상처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어떻게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희망적인 새로운 인간관계의 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대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관계를 설계하는 방식에 깊은 변화를 준다.